"Sleepless Night"

POST : 시간 같은 잡담

작년 여름, 증발.

작년 여름의 빗속에서,
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.
어디 한 번, 그 때를 기억해 볼까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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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두 번의 비와 두 번의 증발 현상이 일어난 이후에, 대기는 다시 평년의 기온을 되찾았습니다. 창 밖의 경인고속도로 입구는 이제, 열기로 인해 어그러져 보이지 않는군요. 주위에는 온통 20층 이상의 건물 뿐이라서 낮의 동네를 걸을 때는 단지 적막함만을 느끼는데, 이상하게도 이렇게 비가 오고 난 후의 밤의 풍경은 정이 갑니다.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창문들 수 만큼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, 밤의 풍경 속에서는 단지 사실일 뿐만 아니라 저의 눈 앞으로

  느낌이 되어 달려드는 것입니다.


  수분은 증발한다. 초등학교 시절, '자연' 교과서에서 시작하여 고등학교때의 과학 교과서에 걸쳐서 그 수식이 다를 뿐 수십 번은 들은 이야기일 것입니다. 그렇겠지요,

  자연의 섭리일 테니까.


  하지만 비가 오고 난 후에는, '수분은 증발한다' 는 간단명료한 문장이 오감을 통해서 증명됩니다. 과학적인 절차들은 잘 모르겠지만 눅눅하지만 맡기 좋은ㅡ이라는 기묘한 속성을 지닌 비의 향기는, 사라지면서 피부로 와 닿는 청량감을 남기고 갑니다. 습기로부터 해방되어 가는 기쁨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요. 뭐, 이런 것들이 왜 좋은지에 관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적당한 어휘를 찾지 못해서 쩔쩔 맬 것이 분명합니다. 그것은 마치...

 [키스 자렛이 왜 좋은지에 관하여 200자 원고지 5장 내로 서술하라.]

  와 같이 구질구질한 영역의 논술 문제와도 같은 것이지요.


  그런 이유로 인해 오늘 하루는 꽤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. 물론 눅눅하게 늘어 붙는 비를 맞은 후에, 초과 정원을 배로 넘긴 버스를 30분 가량 타고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. 그 외에는...... 담배 연기가 공중에 더 멋있게 흩어지는 것 같았고, 키스 자렛도 좋았지만 마이언트메리도 참 좋았고, 회의도 잘 끝났고, 강의도 무사히 들었고,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에 저자의 싸인도 받았고, 뭐 나무랄 데 없는 행복한 9 to 5랄까요.

  그나저나,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. 증발은 수분만 할까요? 모니터에다 대고 물어 봤자 컴퓨터는 대답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, 이번에는 창 밖의 밤 풍경에다 대고 물어 봅니다.

  글쎄요.... 거 참....

  이라고 대답하는 듯 한 무수한 유리창들을 보면서, 물어 본 내가 바보지ㅡ라는 생각을 합니다. 경인고속도로도, 60층짜리 건물도, 대답을 해 주지 않네요. 그럼 이젠 내 자신에게 물어 볼 차례인가? 네, 그렇네요. 결국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말이 문득 떠올라서 잠시 슬퍼한 후에,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 옵니다.


  일상에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. 따지고 보면 공기의 이동일 뿐이지만, 그 공기의 이동에 우리는 천차만별의 심정을 겪습니다. 그리고 이번에 온 공기는 온도 변화를 겪어 다시 새로운 공기가 되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 옵니다. 악순환이라면 악순환일 수 있는 이런 바람들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이나 메시지들을 실어 날려 보냈다가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돌아온 그것들을 다시 호흡하며 다음 번의 바람을 기다리면서 또한 기다리지 않습니다. 수 차례의 바람은 우리에게서, 한 때의 생각들을 증발시킵니다. 그러다가 다시 비가 내리고...... 우리가 한 때 했던 생각들이 덩어리째 모여 이루어진 빗줄기에 흠씬 두들겨 맞으며 다시 한 바가지의 생각을 더한 이후에 다시 그것들을 떠나보내는,

  거 참, 악순환이라면 악순환일 수 있는 과정입니다.



  절기를 잘라 먹은 듯 초여름의 기후가 기승을 부리다가 갑자기 변해서 눈이라도 떨어질 듯한 하늘 아래에,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과 글들과 음악들이 조용히 앉아 있네요. 인사하기에는 좀 소원한 사이가 되어 버린 것들이지만...... 아, 그나저나 저 창 밖의 창문 속에 사는 창문 수 만큼의 사람들은

  오늘도 안녕할까요?
  안녕하세요.
  환절기 건강에 주의하시기를.

  피식ㅡ하고 웃는 옆모습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, 묘한 기분으로 창문을 닫고 돌아와 다시 모니터 앞에 앉습니다.

  아무튼,
  평안들 하시기를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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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6.07.12 16:02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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